2026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

기억합니다.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위해



1988년, 15세 노동자 문송면의 수은중독 사망과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직업병은
우리 사회에 산업재해의 참혹한 현실을 드러냈습니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변화는 이들의 희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38년이 지난 오늘도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오늘의 추모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다짐하는 자리입니다.



  • 2026.6.28.(일) 10:30~12:30
  •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 추모위원 참여하기 : https://bit.ly/2026추모  
  • 프로그램  :  추모제 ·묘소탐방 (문송면, 김봉환, 양회동, 이훈구의 묘소, 미누 식수)



2026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 준비위원회

추모위원 : 

(단체)  간호학과 연합동아리 간호학생 네트워크 VITAL (바이탈) / 노동건강연대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 녹색병원 / 녹색병원 녹색위원회 /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 (사)일과건강 / 원진직업병관리재단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개인)  고금숙 / 김다빈 / 김은희, 조태상 / 우하경 / 이상윤 / 이선임 / 천지선 / 최규진 / 최주현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활동한 우리의 벗, 이훈구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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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활동한 우리의 벗, 이훈구 동지

이훈구 동지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초대 소장이었고 상임활동가였습니다. 1960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교에서 탈춤반 활동과 진영이라는 대학연합서클활동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인천지역활동을 이어갔고 전노협 백서 발간위원 기획논의,집필활동에 함께 했습니다. 이후 노동자의 힘 활동을 거쳐 2003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창립준비위 및 초대소장을 지낸 후 2020년 1월까지 한노보연에서 활동했습니다.

이훈구 동지가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1999년 무렵 근골격계질환으로 산재 판정을 받고 요양 중이던 이상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습니다. 연구소가 설립될 무렵에는 근골격계 직업병 문제에 집중, 이 운동을 산재 인정 투쟁에서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으로 확장시켰습니다. 금속 자동차산업 주간연속2교대제 투쟁을 하면서는 “밤에는 잠 좀 자자”고 외치며, 노동자 건강을 외면하는 자본에 맞서 싸웠습니다. 특히 주요 현장에서 노동강도 강화, 임금 삭감, 노동시간 연장 없는 진짜 주간연속2교대제를 만들어내는 투쟁을 함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집단정신직업병 인정 투쟁, 그리고 거대한 삼성 자본에 맞서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인정 투쟁까지 매순간 현장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활동가였습니다. 또한, 충남 지역에서 노동자건강권 운동을 펼치기 위해 여러 동지들과 머리를 맞대며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를 설립에 함께했습니다.

특히 그가 강조한 것은 다른 누구의 힘도 아닌 현장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현장에서 답을 찾으며 바꿔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자의 몸과 건강을 기준으로 노동강도를 정해야 한다는 것, 노동자 현장 통제권 강조 역시 그가 항상 강조하던 것들입니다. “일하다가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권리를 쟁취하자”를 넘어 “더 안전하게, 더 편하게, 더 쉽게”를 주장하는 ‘3더’ 운동을 내세웠던 활동가였습니다.현장 조사를 할 때는 현장 조합원들 속으로 들어가 끊임 없이 토론하며 답을 찾아가던 활동가였습니다. 많은 후배, 동료 활동가들이 그를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고 방향을 제시하던 사람, 흥겹게 투쟁하던 선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를 돌아보고, 동료와 내 현장, 지역까지 변화시키는 운동을 해야한다고 강조하던 그의 삶과 투쟁은 여전히 많은 활동가들에게 방향등이 되고 있습니다.



이훈구동지 추모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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